나는 통제가 싫다.
선천적인 영향애 가깝다고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그래 왔고, 지금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나랑 죽어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와 잘 통하는 부류는 소수다. 나머지는 상대가 나에게 맞추어 주거나, 내가 상대에게 맞추어 주거나. 나는 상대의 비위를 꽤 잘 맞추어주는 사람이기에, 대화가 잘 안통하는 사람은 잘 없었다. 그러나 아주 소수는 내가 무슨 노력을 해도 도저히 친해질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런 부류라는 것은 그들과 만난지 1시간 안에 바로 느낄 수 있었다. 학창시절에도 그러한 사람들은 내 주변에 꼭 있었고, 성인이 되고 나서도 똑같다. (비율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과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편인 경우가 많았다.
내가 발견한 그들의 공통점은 ‘상대방을 통제하려 하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만난 어떤 친구는 내가 공부하는 방법을 계속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그러고는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할 바에는 차라리 이런 방식으로 하는게 어떠냐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반 1등이었고, 그 친구는 10등 정도 됐다.) 그건 내 공부 철학과 맞지 않아 한 귀로 듣고 흘렸지만, 나중에도 그 친구는 나를 볼 때마다 매번 그 얘기를 했다. 그 방식을 도입하기 싫은 이유를 설명하면, 그 이유를 하나씩 조목조목 반박하려 했다. 결국 그 친구와의 대화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지곤 했다.
대학에서 만난 어떤 친구는 주변 사람들을 다 어린 애 취급을 했다. 다들 칠칠치 못하고 자신이 챙겨주지 않으면 혼자서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들처럼 말했다. 그의 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더 가관이었는데, 주변 친구들에게 애인이 자기가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이며, 자신이 매일 하나하나 도와주고 있음을 계속해서 말했다. 여러명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애인을 계속 바보 취급해서, 듣는 내가 다 뻘줌해졌다. 그 외에도 주변의 작은 실수를 약점 삼고, 그들이 자신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도록 바라는 것 같았다.
또한 예전 직장에서 만난 상사는 자신의 일처리 방식을 나에게 강요했다. 그 분은 내가 오랜 시간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기를 바랬다. 내가 더 효율적으로 빠르게 끝낼 수 있는 방식을 찾아서 하고 있으면, 일하기 싫어 잔머리를 쓰는 사람 취급을 했다. 그리고 나의 모든 행동을 세속적으로 해석했다. “OO씨는 그저 여기서 시간만 대충 떼우고 돈 벌고 가고 싶겠지만, 저는 절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뭐 이런 식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있는 모든 시간을 일을 하는 데에 쓰기를 바라며,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그 분 아래서 몇개월을 일하다, 나는 더 높은 분께 총애를 받아 사수가 바뀌었다. 새로운 사수는 이 사람의 정반대였는데, 내가 정해진 기한 안에 깔끔히 일을 처리하기만 하면 내가 어떤 일을 해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철저히 일을 했으며, 결과적으로 좋은 시너지를 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가스라이팅’의 정의에 가까운 것 같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전부터도, 나는 본능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을 싫어했던 것 같다. 나의 작은 행동들을 자기가 결정하려고 하고, 나의 속마음을 지레짐작하면서 무례를 범하는 사람들에게 극심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 그 사람들이 맺는 인간관계를 살펴보면, 그러한 것을 쉽게 용납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같이 있을 수 없다는 느낌마저도 든다.
통제로만 이루어진 사회인 군대에서의 내 삶은 어땠을까? 오히려 군대에서 받는 통제는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그것은 군대라는 것을 이해한 상태로 군대에 들어갔기 떄문이다. 군대에 들어갈 때, 군대는 역사적으로 국가 시스템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누군가는 징병되어 가야한다는 것을 수용한 상태였다. 또한 그러한 군대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상명하복이 필수이며, 군대의 통제를 거역하려 하는 것은 공동체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오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아마 군대에 들어가기 전 여러 군대 관련 영상 매체를 보며 미리 느끼고 들어가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군대에서 나를 통제하는 부사관이 나에게만 일거리를 줄 때에도 아무렇지 않았고, 선임들이 심부름을 시킬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처음보는 간부가 나의 복장을 지적할 때에도, 그리고 몇몇 나이가 어린 부사관이 나의 진로를 컨설팅해줄 때도 그러려니 하고 들어주었다. 아마 이 시스템 자체를 수용하고 나니, 그 시스템의 부품인 사람들이 나를 통제하려 해도 그 통제에 따르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군대에서 기분이 나빴던 것은 어떤 선임이 나의 사소한 부분을 통제하려 했었을 때였다. 저녁은 좀 건강한 걸 먹으라고 계속 뭐라 할 때나, 미용실은 자신이 추천한 데를 꼭 가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한다던지. 뭐 이런 사소한 것마저 나의 선택을 제한하려 할 때, 그 사람이 싫어졌었다. 선임이 나의 그러한 것을 컨트롤하려 하는 것은 군대 시스템과 하등 관계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건 절대 바뀔 수 없는 내 특성인 것 같다. 정확한 그 원인이 뭐였건, 앞으로도 그러한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 삶을 행복하게 하는 길인 것 같다. 그러한 이유에서라도, 조금 더 자유로운 문화의 사람들과 교류하려 노력한다. 그래서 지금의 직장도 마음에 들고, 혼자서 자취하며 생활하는 것도 기분이 좋다. 무엇이 됐든 통제하려는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공무원 시험에 붙어서 발령을 받았는데, 내 상사가 나를 컨트롤 하려 한다고 그 모든 노력을 때려칠 순 없지 않은가. 내 삶을 선택의 자유가 넓은 공간에서 지내고 싶다.
글을 끝내기 전에,
혹여나 내 주변 사람들 중에 이 글을 보고 있다면,
그리고 자신이 내가 말한 나를 통제하려는 사람에 해당하는 것 같다면,
나는 이제 더이상 악감정이 없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그들을 그냥 그러한 특징을 가진 부류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들을 싫어하는 내 감정을 관찰할 뿐이다. 그 사람들이 미운게 아니라, 관찰하고 보니 내가 그 사람들 옆에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당신의 특성을 내가 함부로 바꾸려하지 않듯, 내 특성도 그대로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 당신의 삶에도 좋은 일이 가득하길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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