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인생의 공부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어렸을 적부터 우리집은 항상 공부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버지가 공부를 매우 잘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커서 알게 된 거지만, 그 당시 인천 전체에서 1,2위를 번갈아 하던 수재였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친척들과 우리 부모님은 나는 무조건 공부를 잘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유치원생일 때, 우리 집은 벌이가 좋았다.
적어도 내 교육비로는 아낌없이 쓸 수 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비싸다는 영어유치원과 좋은 학원들을 다녔다.
모두 어머니의 선택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학원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그런 소식에 더욱 귀가 밝았으리라.
사실 이 기간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너무 오래 전 이야기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간 나는 이 시절을 많이 아쉬워했었다.
다른 친구들은 이 기간에 많은 경험을 하고 살았는데, 나는 주로 학원과 집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는 아버지랑 떨어져 살았기도 했었고, 어머니도 너무 바빠서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친구들과 비교하며 내가 삶의 경험이 별로 없구나하고 생각했던게 기억난다.
초등학교
초등학교 저학년에 나는 똑똑한 아이로 학부모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저 집 아들은 이미 많은 사교육을 받았다더라,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더라, 하는 소문
지금 생각해보면 저학년이 잘해봤자 얼마나 잘하겠는가 싶다.
초등학교 3학년 집에는 여러가지 우여곡절이 있었고, 동생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보면, 나의 사교육 결정권은 아버지에게 넘어갔다.
아버지는 모든 학원을 다니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노는 데 사용하였다.
신기한 것은 지금 떠오르는 모든 어렸을 적 기억들은 다 초등학교 3~5학년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그 때가 매일 놀던 시기여서 이런저런 일들도 많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사회성도 기르는 기회였기 때문인가보다.
이 때 처음으로 영화에 빠졌고, 영상 제작과 편집, 게임, 마술, 연애, 다양한 장난, 뛰어 놀기 등등등..
정말 이것저것 많이 하며 하고 싶은 대로 살던 시절이었다.
이래서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된다는 말이 있나보다.
앞으로 나도 자식을 키우면 자유롭게 방임할 것이다.
이 때의 기억들이 남아서 내 성격을 이루는 것 같다.
나아가서 내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인지를 유추할 수 있다.
자연스레 공부랑은 멀어졌고, 반에서 상위 30%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공부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조금씩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착한 가스라이팅이 있었다.
공부를 해야 한다, 너는 아빠를 닮아 좀 하면 성적이 오를 것이다 등등.
강압적으로 시키진 않아도 꾸준히 생각을 주입하신 것 같다.
아,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컴퓨터 게임을 접했다.
마인크래프트, 롤, 피파.
이 게임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끈질기게 내 삶과 함께했다.
이 시기의 나는 하루에 6시간 넘게 게임만 했다.
친구들은 '쟤는 보면 항상 게임에 접속해있다.'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 때 배운 것은, 하나를 끈질기게 오랜시간 하다보면 아무리 재밌는 게임이라도 질린다는 것이다.
질려서 게임을 하기 싫은 적도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중학교
중학교 1학년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첫번째 여자친구가 있었고, 나는 게임에 푹 빠져있었다는 것 외에는.
초등학교의 방황이 쭉 이어진 것이다.
나름 사춘기를 겪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 약간의 반항도 해보고,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던 건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던 시기였다.
부끄러워 어디에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그것은 단순한 질투심 때문이었다.
그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 때문에 질투를 느끼던 한 남자 아이가 있었다.
그 때 나는 전교 150 등 정도였고, 그 남자 아이는 전교 50등 가량 됐다.
그 남자 아이를 이기기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저깟꺼 내가 못 이기겠어? 내가 얼마나 똑똑한데'
이렇게 보면 아버지의 가스라이팅이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다.
내가 그저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다면, '쟤는 공부를 잘하네, 나는 저렇게 안되겠지.'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운 좋게도 그 당시 좋은 학원 선생님도 만났다.
단지 물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지만, 전직 교사로 많은 학생을 다룬 경험이 있는 분이었다.
물리도 쉽게 가르쳐주었을 뿐더러, 좋은 학습 방법들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방법을 하나하나씩 해보았다.
그 시절 처음으로 아파트 독서실을 이용했다.
학교 끝나고 꼭 1~2시간은 독서실에 있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중3 1년 동안 엄청 성적을 올렸다.
중2 때 150 등에서 중 3 때는 20등 쯤으로 끝냈다.
그 당시 우리 중학교는 전국적으로 공부로 5위 안에 드는 학교였어서,
특목고를 30명 넘게 보낸 학교였으니 꽤 엄청난 성장이었다.
그 와중에 한 남자 애한테의 질투로 시작한 일이지만,
그 친구를 넘어설 때는 이미 질투심은 없었다.
그저 성적이 올라가면서 주변에서 나를 칭찬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여기서 내가 중요하게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다.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알려준 것 중 나에게 가장 도움이 된 말이다.
만약에 누가 아빠한테 서울 뉴욕에 큰 금 송아지 동상이 있다고 했다고 해보자.
보통 들으면 '에이 말도 안돼~'라고 하고 말겠지.
그런데 한 명은 내가 미국에 대해 잘 아는데, 그런 것은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한 명은 자기가 직접 보고 왔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아빠는 있다고 믿을거야. 왜냐하면 그 사람은 갔다왔기 때문에.
아빠는 무조건 그 것을 이미 해본 사람 말을 믿어.
너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잘하려면 꼭 학원에 가야한다고 하잖아.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실제로 공부를 잘했는지를 꼭 살펴봐. 아닐걸.
그리고 아빠는 실제로 공부를 잘했잖아.
그러니까 아빠 말 믿고 학원 가지 마.
아, 이 말은 지금까지도 내 삶의 중심이 되는 말이다.
나는 무조건 목표하는 걸 이루는 방법을 선택할 때, 그 목표를 이룬 사람의 말만 듣는다.
아무리 대부분의 사람이 한 방향으로 가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대다수 분야의 사람들은 업계 1위가 하는 조언과 반대 행동을 한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어요' 하는 전교 1등의 말을 안 믿는 아이들처럼.)
이처럼 10대 때 우리 아버지가 하는 모든 말은 나에게는 진리였다.
그리고 20대가 된 지금, 삶에 대한 아버지의 충고를 듣지 않고 있다.
더이상 아버지가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위의 교훈대로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롤모델의 말을 듣고 있다.
고등학교
집에서 먼 고등학교를 등록했다.
노는 내가 익숙했던 중학교 친구들은 내가 공부할 때마다 '너가 웬 일로 공부냐' 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내가 '공부하는 사람'으로 비춰지길 바랬다.
이 시기에는 정말 오랫동안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
고등학교 때는 내가 잘못 결정 내린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결정이었다.
이 결정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삶을 뒤바꿀 결정은 잘 없다는 것이다.
뭘 선택하든지 내가 하기 나름이니 빨리 결정을 하는 게 이득이다.
고등학교 1학년은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아무도 모르는 환경에, 야간 자율학습과 통학 문제까지.
게다가 집안의 문제도 신경 쓸 게 많았다.
생각하느라 걸어서 통학한 적도 많다. 왕복 3시간 거리였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1학년 담임선생님과 입시상담을 할 때다.
어떤 학교를 가고 싶냐고 하셔서, 한양대학교 정도라고 했다.
이 역시도 머릿속에는 SKY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안된다는 말을 착하게 돌려서 말했다.
그 당시 내가 전교 11등 정도 하고 있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그 정도면 보통 인하대를 갔다는 것이다.
목표를 낮추거나, 노력을 말도 안되게 열심히 해야한다고 말했다.
속으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으나, 나의 꿈을 꺾는 선생이 되기 싫어서 돌려서 말하는 게 느껴졌다.
기분이 나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전교 11등으로 시작해서 전교 11등으로 끝냈다.
그에 반해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성적이 참 많이 올랐다.
전교 5~6등 수준이었고, 모의고사에서는 전교 1등도 해봤다.
물론 고2 때 더 열심히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1 때 참 꾸준히 공부했었다.
결과물로 나오지는 않지만 그냥 묵묵히 했었다.내가 훨씬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점심시간에는 꼭 MP3로 노래를 크게 틀며 공부를 하거나, 의자에 누워서 잠을 잤다.수업시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에서 가장 집중해 들었다.반마다 수업시간에 반응이 좋아 선생님이 좋아하는 아이가 나였다.
물론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는 정말 장난을 많이 쳤다.진짜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일들을 많이 했다.아마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스트레스를 풀 곳이 필요했던 것 같다.진짜 말도 안되는 행동도 많이 해서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고2가 지나고 입시상담을 하던 때, 나는 목표를 서울대라고 말했다.
물론 그 당시 내 성적으로는 불가능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를 맡아주었던 선생님은 그것을 정말 진지하게 대답해주셨다.
나는 아직도 그 분께 큰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
결국 목표를 이루는 것은 '그렇게 될 것 같다'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물론 서울대라는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아쉬움은 별로 남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후회가 없다는 감정을 그 때 느껴봤다.
학창시절 공부를 하며 내가 배운 것은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무엇이든 마음 먹은 것은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어른이 돼서도 강인한 멘탈로 여러가지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도 많이 배웠다.
내가 150등 하던 중학교 시절에 전교 20등은 매일 공부만 하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직접 해보니 별거 아니었다. 사람 사는 거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옆에서 보는 전교 1등도 나와 똑같이 공부하는 게 힘들고 자주 동기가 떨어진다.
그저 이뤄낼 수 있다는 확신만 가지고 꾸준히만 한다면 나도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너무 대단해보이는 롤모델들이 있다.
이렇게 위대한 삶을 사는 것은 대단해보인다.
내 롤모델들은 나에게 '너도 할 수 있어. 나도 너와 비슷한 상태였어'라는 말을 나에게 건넨다.
공부에 관한 경험이 아니라면, 그건 당신이 그런 유전자를 보유하고 운이 좋기 때문이야 하고 비관적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뤄낸 몇몇 경험들 덕분에, 나도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 과정은 고난이 너무 많다. 매일 새로운 고난이 다가온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에 10년 후에는 그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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