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전

영화감독의 꿈

파크텐 2023. 12. 20. 21:20

1. 2007

영화와의 인연은 7살 때부터였다.

많은 영화감독들도 어렸을 적 영화를 보고 감독의 꿈을 가졌다고 들었다.

내가 7살 때 본 것은 <여우비>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명작은 아니다.)

 

 

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

유치원 근처에 큰 영화관이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첫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일찍 퇴근하시고 날 데리고 영화관을 가셨다.

 

 

영화는 기억이 안나지만, 그 때 느낀 좋은 감정은 남아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영화관 건물을 올려다 봤을 때의 공기.

 

 

2. 2012

사춘기 때 내 삶은 오직 3가지였다.

게임(마인크래프트), 예능(무한도전), 영화

 

 

항상 이 3가지를 했다.

아버지가 추천해준 영화들 위주로 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버지가 참 나에게 영향을 많이 주었다.

그 때 봤던 영화 중 생각나는 건 <메멘토>와 <도둑들>.

 

 

어렸을 적의 꿈은 자연스레 보이는 좁은 범위에서 결정지어지기에,

내가 존경했던 과학 선생님을 따라 "과학 선생님",

무한도전을 좋아해 "예능 PD",

 

그리고 "영화 감독"이었다.

 

 

부끄럽지만 많은 UCC들을 따라하며 영상을 제작했다.

(이 때 나에게 큰 영감을 준 오세진, 신동훈, 심다빈님께 감사를)

친구들을 모아 영상을 찍고, 편집 프로그램을 스스로 공부해서 편집해 올렸다.

 

이때부터도 나는 카메라 앞보다는 카메라 뒤를 선호했다.

 

 

3. 2017

이 외에도 UCC 대회가 있으면 꼭 나갔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물론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중학교 때 처음 공부를 시작했고,

수학과 과학에서 남들보다 더 쉽게 성적이 잘 오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에 맞춰서 물리 쪽으로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며, 자연스레 지금은 컴퓨터 공학과 학생이 되었다.

 

 

나에게 진로를 변경할 주요한 기점이 있었다.

고1 겨울, 문과와 이과를 결정해야 할 때였다.

취업이 잘되는 지 여부나 내 성적은 모두 이과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영화감독이 되면 재밌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당시 "진로"라는 과목이 있었다. 진로 선생님께 상담을 신청했다.

대화 내용이 기억은 안나지만, 그 대화를 나누고 나는 "이과"를 선택했다.

그 선택 하나로 내 삶은 대학 입학까지 이어졌다.

 

 

4. 2020

나의 영화 인생에 또 하나의 중요한 기점은 대학교이다.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를 정하는데, 영화 촬영 동아리가 보였다. 가장 하고 싶었다.

지원할 때 두려움을 느꼈지만, 이 동아리에 들어가면 내가 원하던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2020년은 코로나라는 큰 사건으로, 동아리 활동은 거의 없었다.

물론 그 동아리에서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시작됐고, 많은 인연을 얻었다.

(생각보다 대학교 1학년에 동아리를 정하는 일은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이다. 그 때 나는 몰랐지만)

 

 

대학교 2학년 때 영화촬영 동아리의 부장을 맡았다.

그냥 얼떨결에 부장을 맡았다는 표현이 맞겠다. 정신차려보니 부장이었다.

 

 

이 동아리 부장 경험은 정말 힘든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그 당시 여자친구에게 힘들다고 맨날 징징댄 기억이 난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단체 대표를 맡는 것이 어려웠다.

앞에 나가서 얘기하는 것은 그럭저럭 익숙해졌어도, 구성원들이 열의를 가지도록 독려하는 일이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나 때문에 이 동아리가 예전 같지 않은 것 같고, 나 때문에 죽은 동아리가 된 것 같았다.

 

나와 성격이 맞지 않은 동아리원과는 사사건건 충돌했고, 그 당시 나는 속이 좁아 작은 일도 관대하게 넘기질 못했다.

나는 사람들이 즐길 환경을 만들고 뒤에 빠져있는 성격이었지만, 부장의 자리는 뒤에 빠져만 있을 수 없는 역할이었다.

 

 

5. 단편영화 촬영

그러나 이 시기에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을 한다.

바로 단편영화에 각본/제작/편집/촬영/감독의 모든 역할로 참여한 것이다.

 

내가 거의 유일한 편집팀이었다.

10분짜리 영화의 편집을 맡았는데, 편집 단계에서 보니 줄거리를 설명하는 장면이 부족했다.

장면과 장면 사이를 채울 쇼트들이 필요했다.

 

카메라를 들고 직접 추가 촬영을 했다.

그 당시 감독은 바빠보여서, 내가 직접 인서트를 찍으러 다녔다.

연구실에 있는 주인공했던 친구를 불러 잠깐 찍기도 했다.

 

 

직접 찍어보니 재미있었다.

어렸을 적 UCC를 기획하고 그에 맞는 장면을 찍으러 다니던 시절 느낀 즐거움이 느껴졌다.

며칠동안 밤새 영화 편집을 했는데도 참 재미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m5J6oVQs4g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극적이던 내 삶에서 안전지대를 벗어난 순간이었다.

한 달 동안 고민하며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 감독에 뽑혔다.

 

 

그 당시 2개의 영화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았다.

하나는 각본,감독,편집,제작 / 하나는 촬영,편집,제작

 

사실 대학교 공부는 거의 안했던 것 같다.

남들 다 교재 들고 다니는 캠퍼스에, 나 혼자 영화 장비를 들고 걸어다녔다.

 

 

감독의 일은 말도 안되게 힘들었지만 너무 재미있었다.

이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영화 감독이 되는 꿈을 마음속 한 켠에서는 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무나도 재밌지만 고통스러움을 알기에, 지금은 영화감독을 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몇십년 동안 하고 있었을 고민을 젊었을 때 몇개월 만에 해결했으니, 가히 엄청난 시간을 번 경험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쓴 시나리오는 영화가 엎어졌다.

내가 제작한 작품은 유튜브에 올라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dABjh8eDXMo

 

 

 

6.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사실 위 단편영화를 찍을 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잘 몰랐다.

그저 남들 좋다는 영화를 보고 그런가보다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직접 영화를 만드니, 영화가 단숨에 이해됐다.

 

 

시나리오, 촬영, 편집을 하면 생각보다 신경써야 할게 너무 많다.

2시간짜리 영화에는 그 모든 고민과 노력이 함축되어있다.

 

 

예전에는 그저 영화가 흥미진진하면 좋은 영화라 했다.

그러나 내가 직접 만들어보니 시야가 엄청나게 확장됐다.

 

적절한 숏들이 어떤 순서로 표현되느냐, 어떤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불필요한 장면은 없는지, 캐릭터는 어떻게 묘사하는지 등등.

이제서야 비로소 명작이라고 하는 작품들이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위 단편영화를 찍고 군대로 들어갔다.

(실제로 군 입대 3일전에도 위 단편영화를 편집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나는 정말 많은 영화를 봤다. 거의 100편에 가까운 영화를 봤다.

시간이 안 간다고 생각날 때면 영화 한 편을 더 봤다.

(후임들과 영화를 보는 부조리를 만들기도 했다.)

 

 

군대에서 나온 지금도 영화를 보는 것은 내 행복이다.

이제는 영화에 대한 모든 공부가 다 재밌다.

영화사 책도 재미있고, 고전 영화들도 재미있다.

 

 

7. 영화와 꿈

영화와 관련된 일로 돈을 벌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큰 스트레스일거라는 게 느껴진다.

그것보다는 영화 평론과 같이, 다르게 가치를 전달하는 직업이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뭘 하든지, 영화와 연관지어 생각해볼 것이다.

만약 내가 유튜버를 하고 싶다면, 영화 유튜버.

나중에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다면, 영화와 엮어볼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 내가 20대 때 경험하고 배운 것들은 점이다.

나중에 점들이 연결되어 선이 되는 순간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또 한 가지 꿈이 있다.

역사에 남을 영화에 출연하는 것이다.

 

뭐 어떤 식으로 몇 초 동안 출연하는지는 상관없다.

그저 오랫동안 평가받는 명작 영화에, 나의 흔적이 잠깐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평생 술자리 안주로 쓸 것이다.

 

 

 

뭐 지금 영화 엑스트라 알바에 지원해도 되겠지만,

그냥 돈을 많이 벌어서 나중에 명작 영화에 투자하고,

나를 엑스트라로 써달라고 부탁해야겠다.

 

 

8. 마치며

쿠키 영상처럼 나도 쿠키 글을 써야겠다.

 

 

최근에 한 영화를 봤는데, 정말 감동적이었다.

장르는 공포 코미디이지만, 영화를 제작해본 사람들은 딱 느낄 것이다.

이 영화는 영화를 제작해본 사람들을 위해 바치는 영화라는 걸.

영화인을 위한 영화.

 

 

이 영화를 보면서 제작년 영화 촬영했던 그 날들이 떠올랐다.

혹시 이 글을 볼 사람들 중 영화 제작에 참여한 적이 있다면, 꼭 꼭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초반 30분까지는 어리둥절 하며 보는게 당연하니, 꾹 참아야 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カメラを止めるな!

2017 · 공포/코미디/드라마 · 일본

1시간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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