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전

[아이디어] 종이공작도면 커스텀

파크텐 2023. 7. 29. 21:13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과학소년 잡지를 구독해주신 적이 있었는데, 가끔 그 잡지 뒤에 종이공작이 있던 적이 있었다. 종이 전개도를 오려, 풀로 붙이면 입체적인 모형이 완성된다. 예전부터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는 몇시간 동안 방에서 그것만 했던 것이 기억난다.
 

앨범을 뒤져보니, 2014년에 찍은 내 방 사진이 있었다. 아마 만든것은 2012년 쯤일 것이다. (뒤에 CCTV도 종이다)

 

나는 심심하다

말년에 할게 없었다. 14시간짜리 새벽 근무에서의 업무는 보통 2시간 안에 끝났다. 보통 12시간동안 책을 읽고 VBA로 코딩을 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다 재미가 없어졌다. 
 
 
그러다가 재미로 파워포인트로 종이공작 도면을 만들어봤다. 옆에 있던 전화기 모형을 만들어보고, 무전기 모형을 만들었다. 파워포인트에 생각보다 도형을 다양하게 색칠하고 붙이고 자를 수 있는 툴이 많았다. 무전기의 세세한 글씨와 아이콘을 하나하나 그렸고, 우리 무전기 스피커에 2년째 껴있는 작은 돌 조각까지 넣었다.

 
 
이거다! 남은 근무를 책임질 컨텐츠를 찾았다.
 
 
 

추억을 만들다

그런데 무얼 만들지가 고민이었다. 분명 시간은 많았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곧 제대하면 근무지에서의 추억은 다 기억 속에만 남겠구나.

 
우리 근무지는 군사기밀이라 사진을 찍을 수도 없다.
 
내가 1년 6개월동안 업무를 최적화하기 위해 노력한 이 곳이,
처음에는 업무에 적응하느라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나중에는 많은 독서와 생각을 하며 성장한 이 곳이,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거다 싶었다. 내 추억의 장소를 입체로 만들어간다면 어느 육군규정이 나를 막을 수 있을까.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정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시간이 엄청 잘갔다. 
 

홀로 밤새 근무를 서고 있는 나. 팩스기 소리는 이제 생각에 잠기게 하는 배경음일 뿐이다.


 가뜩이나 손도 큰데 작은 미니어처를 만들려고 하니 눈이 빠질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재미있었다. 나를 이해한 시간이었다. 외부의 개입이 적던 어린 시절, 내가 정말 빠져있던 것들이 이런것이었다. 자르고 만들기. 
 
현실에 있는 물건의 크기를 줄자로 재단했다. 그 이후, 파워포인트로 1/40 크기로 도면을 만들었다. 그 이후, 도면 위에 도형을 그리며 색을 흉내냈다. 색의 RGB값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현실의 색과 가장 비슷한 색을 찾아내곤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전개도를 하나 만들고, 두꺼운 A4용지에 출력해서 또 한시간 작은 물건 하나를 제작했다.
 
너무 재밌다. 심지어 퇴근할 시간이 되면 살짝 아쉽고, 출근할 때가 되면 기대가 되고 그랬다.
 
 
같이 근무하는 다른 분들도 나의 도전을 좋아해주셨다. 귀엽다고도 해주셨고, 날마다 물건이 많아지는 모습을 보시면서 재밌어 하셨다. 많은 분들이 나를 응원해주셨다. (요즘 미니 버전의 내가 말년이라고 아무것도 안하고 의자에 앉아있다고 불평하는 분도 계셨다.)

 

종이공작 도면 제작 사업의 기회를 엿보다

머리 속에 사업 뿐인 내가 사업으로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건 당연한 수순이다. 처음에는 어린 시절의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어린이들을 위해 문구점에서 팔까 생각해봤다. 문구점에 시장조사하러 가봐야겠다.
 
 
내가 맨날 무언갈 만들고 있으니까, 어느 분이 나에게 자신의 차를 제작해달라 하셨다. 차에 작게 제작해서 붙이고 싶다고 하셨다. 군생활동안 많은 도움을 받은 분이라, 반드시 만들어서 보답해드리고 싶었다.
 
 
기존에 만들던 방식은 실제 제품을 자로 재고, 같은 비율로 줄이는 것이었다. 도면을 제작하며 계속 제품을 관찰하고 만질 수 있으니 수월했다. 그러나 차는 내가 잴 수도 없고, 근무지에서 볼 수도 없었다. 막막했지만 만들어드리겠다 결심했으니 어떻게든 방법을 찾게 됐다.
 

 

인터넷에서 차의 앞면, 옆면, 윗면, 뒷면을 각각 찍은 사진을 다운로드해서 출력했다. 그리고는 그 출력본을 근무지 컴퓨터에 스캔해서 집어 넣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차의 디자인을 선으로 땄다. 그렇게 하니 사실상 실제 제품의 크기를 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런 방식으로 하니 나는 그 제품을 실제로 보지 않아도 그 제품을 만들어낼 능력을 얻게됐다. 

 

시간만 있으면 장난감차 모터를 연결해서 굴렸을거다

 


종이공작 커스텀 사업

나도 이런 내 드림카를 실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꿈의 시각화 측면에서 큰 동기부여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목표한 차를 작은 크기로 만들어 책상에 올려둔다면, 그걸 볼 때마다 목표를 떠올리고 더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차의 미니카 버전이 없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와 같이 많은 사람들의 목표인 차들은 인터넷에 많지만, 좀 특이했던 내 차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내 목표 집인 파크텐 삼성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집은 더더군다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사업의 기회를 엿봤다. 자신만의 공간을 기록하고 싶은 사람, 꿈의 공간을 시각화하고 싶은 사람, 어떤 추억을 입체적으로 남기고 싶은 사람에게 1:1로 도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마케팅해야할지, 어떤 방식으로 상품을 제공해야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저 아이디어의 단계이다.

 

검색해보니 종이공작을 하는 이들만의 소규모 커뮤니티가 있다.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여기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친구가 '디오라마'라는 분야도 소개해줬다. 축소모형을 의미하는데, 내가 만든 것들이 그거에 가까운 것 같다고 한다. 종이공작은 더 매력적인 것은, 내가 실제로 제작해서 주지 않고 도면만 제작해도, 같은 도면으로 많은 이들이 쉽게 미니어처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앱을 만드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많은 이들이 쉽게 쓸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사업화와 관련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부록] 작품 완성

 

작품 제작이 끝났다.

 

사실 더이상 남은 근무가 없어서 근무지에서 작품을 제작할 수가 없다. 

 

 

근무지에서 심심해 하는 내 모습을 표현했다. 실제로 근무지가 이렇게 텅비어있진 않고, 많은 사람들과 같이 한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을 쓰는게 미안해서 나만 남겨두었다. 뒤에 책상에도 엄청 많은 물건들이 있는데, 시간이 없어서 제작하진 못했다. 근무지에서의 기억이 떠올릴때마다 이 사진을 다시 꺼내야겠다.

 

내가 20대 초반의 2500시간을 갈아넣은 곳이다. 처음에는 낯설었고 새로운 업무가 두려웠지만, 결국에는 내 삶을 바꿔놓은 공간이다. 여기서 밤새 책을 읽었고, 글을 썼다. 여기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었고,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 생각했다. 좋은 사람을 만났고, 나와 안맞는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이 추억의 공간을 이 작은 미니어처에 묻어두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