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삶/중요한 경험들

과천 경마장 입장료 2000원 + 10000원 베팅

파크텐 2023. 7. 24. 18:04

총 평 : ★★★★☆ 달리는 경주마보다 뜨거운 어르신들의 도박판


결제 일자 : 2023년 05월 14일
사용 기간 : 2023년 05월 14일 (3시간)
가격 : 입장료 현금 2000원 + 한 게임 베팅 10000원 (몇 배를 벌었는지는 글의 결말에 있어요!)
링크 : 렛츠런파크 서울 (https://park.kra.co.kr/seoul_main.do)
구매 이유 :
1년째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속한 군부대가 렛츠런파크에서 10분거리 정도 밖에 안된다. 그래서 예전부터 외출 때 가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경마라니, 흥미진진할 것 같지 않은가. 호기심이 생겨 인터넷에 경마장을 검색했는데, 전국에 3곳 밖에 없다고 한다. (서울[*과천], 부산, 제주도) 가까운 곳에 그런 희귀한 곳이 있다니..!

말과 깊은 교감을 하는 기수에 대한 TV프로그램, 아니면 <오징어 게임> 초반부에 나오는 풍경이 내가 아는 경마의 전부였다. 그냥 단순히 말이 그렇게 열심히 뛰는 걸 볼 기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


실제 모습이 어떠하든 내가 모르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기에,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 (너무 배경지식이 없어서, 가기 전에 경마 나무위키 문서를 정독하고 갔다)

홈페이지로 해당 날짜에 경주가 있다는 것을 미리 확인했다. 친구와 만나 잠실에서 놀다가 경마장으로 향했다.


사용 후기 :

 
와....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경마공원 역에 내리자마자 50대 이상의 분들이 엄청 많았다. 길거리에서 먹거리를 판매하는 분들도 많았는데, 전부 70대 정도 되시는 어르신 분이었다. 롯데월드가 10~20대를 위한 핫플이라면 경마공원은 60~70대를 위한 핫플인 느낌? 서울에 있는 어르신 분들은 다 모인게 아닌가 싶었다. 지하철역에서 경마 잡지를 팔길래, 속는 셈치고 2000원에 구입했다. 엄청 복잡하게 써있는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처음 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걸 사지마라. 경마장에 들어가면 바닥에 100개는 굴러다닌다.)
 


나는 오후 2시쯤 경마장으로 향했다. 경마 경기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예정되어 있어서, 오후 2시는 들어가는 사람보다 나오는 사람이 더 많았다. 경마공원역 인근에 내려 입구까지 쭉 걸어갔다. 엄청 넓다. 주차장이 어엄청 넓게 펼쳐져있으며, 말과 관련된 모형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가는 길을 따라 쭉 들어갔다.

 
입구에 들어서니, 2000원짜리 입장권을 사야된다고 한다. 근데 현금밖에 안된다고 적혀있다. 현금이 아니면 무슨 앱을 깔아야 한다고 해서, ATM기에서 입장료와 베팅에 쓸 총알들을 뽑았다. 시설이 이렇게 좋은데에 반해 입장권이 이렇게 싸서, 역시 도박장의 운영자는 엄청난 돈을 모으는구나라고 느꼈다. 이 큰 시설이 전부 경마 베팅 시스템의 수수료로만 돌아가다니..
 

내부에 들어가니 사람이 더 많았다. 전체적으로 80%는 60대 이상의 어르신 분들이었다. 그리고 15% 정도가 아이와 함께 온 가족 단위 사람들, 그리고 5% 정도가 나와 비슷한 세대의 사람들이다. 시설이 엄청 잘되어있어서 가족들과 오기 좋아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마에 베팅해서 오늘은 큰 돈을 벌고 싶어 보였지만, 가끔가다 이 시설 자체를 즐기러 온 사람들도 보였다.

 

 

어떻게 베팅하는지 몰라서 베팅 가이드라고 적힌 곳 앞에서 두리번두리번 하고 있었다. 그러니, 직원분이 딱 알아보고는 "처음이시죠? 일로 오세요"라고 하셨다. 고인물 게임에 들어간 뉴비 티가 났나보다.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베팅 방식에는 6가지가 있는데, 전체적인 원리는 비슷하다. 1시간 텀으로 하는 경주마다 몇번 말이 몇등을 할지를 맞추는 식이다. 사람들이 어떤 곳에 걸었느냐에 따라 배당률이 달라진다. 경주가 시작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계속해서 배당률을 살펴보며 베팅을 하고, 경주가 시작된 시점에서의 배당률로 게임이 진행된다.

 

한 판마다 걸 수 있는 돈도 다양하다. 최소 100원부터 10만원까지 마음대로 걸 수 있다. 자유롭게 금액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오히려 많은 분들을 끌어당기는 요인이라 생각한다. 부담없이 적은 금액으로 경험해보고, 베팅의 맛을 알아가서 점차 큰 돈을 쓰게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5000원 단위로 걸었다. 딱 큰 지장은 안가지만, 잃으면 약간 속이 쓰린 금액이다.

 

나는 12번 말이 1등을 한다는 데에 걸었다. 이름이 무슨 제네럴 이런 느낌이었다. 경마지에 전문가들이 추천해준 말들이 여럿 나오는데, 거기서 2번째로 많이 거론되는 말을 골랐다. 그냥 감이다. 확실히 내 돈을 걸려고 하니까 경마지가 이해가 됐다. 주식에 물리고 나서 종목을 공부하는 느낌이랄까.

 

경마장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이 어어어어엄청 많았다. 5층에 걸친 모든 관람석이 꽉 차있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다들 업되어 있었다. 어떤 말이 꼭 잘해낼거다, 어떤 말이 아프다더라, 어떤 기수가 요새 기운이 좋다 이런 말들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크게 돈을 벌고 싶어하는 분들처럼 보였다. 

 

앞에 큰 전광판에 배당률과 기타 경기에 대한 정보가 떴다. 전국 3곳에서 매일 금토일마다 경주를 하는데, 시간마다 돌아가면서 한다. 8시는 서울에서 경기를 하면 9시는 부산, 10시는 제주도, 이런 느낌이다. 그래서 실제로 경기를 볼 수 있는건 2~3시간 텀이 있다. 그래도 다른 지역에서 하는 경기도 전광판으로 중개해주고, 마찬가지로 베팅을 할 수 있다. 

 

순식간에 총 베팅 금액이 몇십억 단위를 넘어간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돈이 걸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저녁이 돼서 사람이 많아지기도 하고, 오늘 잃은 돈을 메꾸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그런가.

 

 

경기가 시작되려 할 때, 사람들이 훨씬 많아지며 분위기가 고조됐다. 시작되기전 응원을 하는 방송이 나왔는데, 거의 야구장 급이었다. 파도타기 하고, 한명씩 카메라로 비추면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체적으로 생기가 없는 칙칙한 분위기일 수 있는데, 렛츠런 파크측에서 젊은 사람이나 가족층의 수요를 늘리기 위해 활기찬 분위기를 조성하나보다. 말들이 입장하는게 전광판으로 보였고, 나의 사랑 12번 말도 들어왔다. 수많은 색의 말들 속에서 12번 말은 흰색이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앉은 곳은 결승선이고, 먼 곳에서 출발을 한다. 그래서 처음 달리는 모습은 전광판으로 본다. 생각보다 조용했다. 나는 막 소리지르고 난리일줄 알았는데, 말이 절반을 통과할 때까지 적당히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결승전에 다다를때쯤되자 모두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표효하고, 욕하고, 응원하고, 분노하고. 갑자기 열기가 너무 뜨거워져서 보는 나도 흥분됐다. 출발하고 결승선에 통과하기까지 1분 내외였지만, 분위기는 실로 엄청났다. 야구장에서 역전 만루홈런 쳤을 때 정도의 분위기다.

 

 

... 그건 그렇고 12번말은 4등으로 들어왔다....

 

경기에 끝나면 반응이 극명하게 나뉜다. 80%는 에이씨 하면서 조용해진다. 무표정으로 보이지만 눈빛이 공허해보였다. 나머지 20%는 엄청 신나 보였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 그 순간만큼은 얼굴만 보고 이긴 사람을 100% 구분할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나도 조용해진 80%가 됐다.)

 

 

그렇게 몇판 더 구경하고 윗층에 있는 관람석을 돌아다니다가, 마지막 경기 시작하기 전에 나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갈 때 깔릴까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5시쯤 나왔는데, 적당히 사람이 빠질 타이밍이었다.


소비 분류 : 좋은 소비 (새로운 경험)
재구매 의사 : 거의 없음


정말 끝내주는 경험이었다. 여기에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곳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경마라는 것에 관심도 없었을 테고, 이런 문화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 인근에 엄청난 거액의 돈이 왔다갔다하는 무지막지한 도박장이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주말의 사당역에 어르신 분들이 잘 안보인다 했더니, 대부분 경마공원역에 가있으신가보다.

 

도박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경마장에 가면 생기를 잃은 사람들, 돈을 따려는 기대에 찬 사람들, 화가 난 사람들 등등. 감정에 격해진 사람들이 가득하여 희노애락을 다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그게 젊은 층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세계여서, 특히나 내가 모르는 세계를 처음 발견한 기분이었다.

 

내심 느끼는 바가 컸다. 내가 한 때 깊이 알아보지 않고 돈을 벌겠다고 주식을 산 게 이 분들과 똑같아 보였다. 모두 경마지를 펜으로 밑줄과 동그라미를 쳐가며 분석을 하고 계신다. 각자 나름의 분석적 사고를 하며, 배당률을 보며 자신만의 전략을 세운다. 모두 이번 판에는 돈을 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차있으며,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똑똑한 베팅을 한 것이라 믿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돈을 버는 것은 경마장 측이었다. 이런 큰 부지를 적은 입장료를 가지고 어떻게 운영하나 싶었는데, 매주 몇백억씩 걸리는 판돈에서 엄청난 수수료를 챙기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어디에 돈을 투자를 하거나, 남들과 돈을 가지고 경쟁할 일이 생길 때, 이 경마장을 떠올릴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경마에 푹 빠진 어르신에 가까운지, 아니면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경마장 측에 가까운지.

 

 

재구매 의사, 나는 없다! 물론 돈을 잃은게 속 쓰리기도 하고, 더 큰 돈을 걸면 도박 자체에 빠져들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경험 자체가 의미있었지, 돈을 걸고 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나중에 좋아하는 여자가 경마장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하면 한 번 쯤은 데리고 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