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삶/중요한 경험들

택시 기사님의 인생 이야기 듣기

파크텐 2023. 7. 22. 22:55

나는 택시를 자주 탄다.
(대중교통 대신 택시를 타는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건 글을 따로 써볼 생각이다.)
 


택시 기사님과 말하는 습관을 들이다

내향적이었던 내가 처음 외향적 도전들을 하면서, 처음 시도했던 것은 택시 기사님과 말 붙이기였다. 어느 일본 교수님이 쓴 일상 대화 주제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택시에 타서 말을 걸어보는 게 좋은 연습이라고 했었기 때문이다. 두 달 째 택시를 탈 때마다 의무적으로 말을 붙이려 시도해본다. 지금까지 대략 30명의 기사님과 대화해봤다.
 
기사님들의 반응이 다양하다. 잘 받아주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보통은 기사님들도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시고, 하루 종일 누구와 대화하기는 힘든 직종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택시에서 대화하는 게 일상이었다지만, 코로나 시대 쯤부터는 대화하지 않는 문화가 생겼다. 대화가 피곤해보이시는 분이나, 부정적 에너지의 얘기들이 가득하신 분과는 내가 대화를 멈춘다. (적절한 타이밍에 통화를 받는 척하거나, 갑자기 자는 척을 한다.) 
 
대화란게 하면 할 수록 는다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대화를 자연스레 걸기도 어려웠고, 주제가 안떠올라 대화가 멈춘 적이 많았다. 최근에는 좋은 기사님을 뵈면 내릴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주로 택시기사님은 50~60대 남성분이다. 평소에 50~60대 남성분과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그 과정에서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말씀해주시기도 한다.
 
 

좋은 대화주제 선정하기

중요한 것은 대화 주제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누가봐도 택시 기사님들이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실 것 같은 문제들을 거론하면 된다. 택시 업계의 경향, 우버에 대한 생각, 일반택시/회사택시의 업무 일과, 막히는 시간대, 지역별 도로의 특징, 카카오T의 매칭시스템 등등. 이건 마치 고3 사촌동생과 친해지기 위해 입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관심있게 대응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대화를 하면서 얻는게 정말 많았다. 근본적으로 택시 업계에 대해 실상을 알 수 있었고, 거기서 관련 사업 아이템을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카카오T가 어떻게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업계는 왜 시장 진출을 못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자주 택시를 타는 지역의 특징을 여쭤보면, 어디서 언제 택시를 잡는게 좋은지에 대한 판단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더 다양한 대화 주제가 필요하다. 몇번 대화하다보면, 다른 기사님께 들었던 내용을 몇번이나 듣게 된다. 이야기의 다양성이 없다. 그리고 처음에야 재미있지, 계속해서 택시 이야기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최근 쓰는 루틴은 택시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다른 스몰토크로 넘어가는 것이다. 주로 이런식이다.
 
차를 타며 밝게 인사를 하고, 차가 출발하면 교통상황/날씨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러면 기사님께서는 잘 아시는 분야이기 때문에,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그거에 맞춰서 "개인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면 된다.
 
ex1)
"어후 차가 많이 막히네요."
"그럼요. 이 시간대 이 도로가 잘 막혀요. 퇴근하고 저녁 다 먹은 시간대라."
"아 그렇군요. 주로 여기 근처에서 운행하세요?"
"이 근처 사시는거에요?"
 
ex2)
"오늘 날씨가 비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원래는 4시부터 온다고 했는데, 하늘이 꿉꿉하기만 하지 아직 안오네요."
"아 그래요? 오늘 몇시부터 운행하셨어요?"
"그럼 점심 식사는 하셨어요?"
 
개인적인 주제로 넘어갔을 때, 이야기가 더 풍부하고 흥미로워진다.
 
 

택시 기사님과 인생 이야기를 하다

19일 외출 때 일이다.
 
삼성역에서 방배역까지 30분 가량 택시를 탔고, 기사님은 50대 정도로 보이셨다. 평소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거주지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최근 자취를 고민중이라고 말씀드리니, 내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 더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는 내 이야기를 했다. 20살때부터 어디서 살았고 어떤 일을 했으며, 지금은 어떤 일을 할 목표라는 내용이었다.
 
기사님께서도 어린 나이에 독립을 하셨다고 한다. 만 19세에 울산 본가에서 집을 나와 광양에 있는 제철소에 취직을 하셨고, 20대 중반이 되어 서울로 홀로 올라오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20,30대의 생활과 결혼생활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지금은 나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딸이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홀로 고생하며 살면서 느낀 감정들이나 아내와 자식들에게 느끼는 감정과 같은 매우 사적인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기사님께 내 인생 목표와 도전하고 싶은 투지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다. 오래된 친구들에게도 하기 어려웠던 이야기를 택시 기사님과 나누었다. 진정으로 교감하는 기분이었다. 30분임에도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착지에서 내릴 때, 기사님께서 무얼 하든 열심히 하면 다 되니, 꼭 다 이루어내라고 응원해주셨다.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한명씩 늘어날 때마다 내가 목표에 한발짝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정말 큰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