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삶/중요한 경험들

논산훈련소에서 딴 생각하기

파크텐 2023. 3. 15. 10:46

(1) 군생활의 시작

2022년 2월, 나는 입대했다. 1년 전의 나는 육군훈련소에서 옆 훈련병한테 말을 걸지 말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때가 가물가물할 정도로 시간이 지났다. 1년 간 군대에 있으면서 목표하는 삶의 모습도 전혀 바뀌었고, 내가 좋아하는 취미도 바뀌었고, 내가 시간을 쏟는 곳도 달라졌다. 그 과정에는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다. 현실을 부정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여자친구와 헤어져봤고, 말도 안되는 일로 크게 혼난 적도 많다. 1년 전의 나로 되돌아가서 지난 1년을 복기하며, 구체적으로 내 생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따라가보려 한다.
 
2022년 2월의 마지막 날에 나는 논산으로 입대했다. 혹시라도 살면서 입대하기 일주일 전의 사람을 만난다면, 느닷없이 뺨을 때려보아도 좋다. 분명 웃지도, 울지도, 화내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정확히 그 상태였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건 아무 신경이 안 쓰이고, 주로 멍 때리며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내가 입대할 당시가 코로나가 국내에서 가장 심각했을 시기였다. 그래서 나는 훈련소에서 아무 훈련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훈련이 없어도, 군대의 분위기는 그대로 체감할 수 있었다. 좁은 생활관에 16명이 있어야 하며, 하루종일 침대 위에 정자세로 앉아있어야만 했다. 조교들이 만드는 무거운 분위기에, 내가 군대에 온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2) 30일 동안 생각하면 60만원을 주는 곳

고등학교 때 나는 이상한 밸런스 게임 질문하기를 좋아했다.
 

“ 방에 갇혀서 핸드폰이랑 컴퓨터 아무것도 안주고 멍만 때리게 하는데, 한달에 500만원 준다고 하면 할꺼야 안할거야?”

 
군대에서의 첫 한 달이 앞의 조건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제 코로나가 잠잠해져서 아무도 나 같은 훈련소 생활은 못하겠지만, 누군가 위와 같이 선택할 기회를 준다면, 나는 인생에서 한 달 정도는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생각만 하면, 분명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내 주변에는 공부하는 친구들 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있으면 대학원을 간 이후 취업을 하는 인생만 보인다. 정신없이 과제에 치여 사느라, 다른 길을 볼 여력도 없다. 간혹 친구들 중 하나가 전혀 다른 길을 고민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친구를 제외한 모두가 한 방향만 보고 열심히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훈련소에서 나는 그 경쟁에서 한발짝 물러서서, ‘잠만, 근데 그 길이 맞는 길이야?’라고 의심하는 기회를 얻었다.
 
 

(3) 생각을 바꾸는 3가지 방법

새로운 생각이 들었던 것은 사회의 요소들이 사라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먹고 자는 것 뿐인데, 내가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생소한 천장이 보였고, 옆을 둘러보면 빡빡이들만 보였다. 사회에서는 막연히 느껴지던 군대에 왔다는 것이 숨쉴 때마다 느껴졌다. 온통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나는 새로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영향은 처음 만나본 류의 사람과 이야기해봤기 때문이다.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서,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공부를 어느정도 했기 때문에, 주위에는 대학 진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뿐이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는 더욱 좁은 인간관계를 맺었다. 한 학년에 200명 밖에 없고, 전부 이과인 대학교에서 지내는 것은, 나와 관심사가 비슷하지만 살짝씩 다른 친구들과 만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만난 친구들은 달랐다. 큰 용 문신을 가지고 호기로운 성격을 가진 친구, 중국에서 대부분의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한국의 대학을 다니게 된 친구, 사회에서 삼수까지 해보다가 실패하여 군대에서 수능을 준비하려는 친구, 중학교 시절부터 헬스에 빠져 결국 체대에 진학한 괴물같은 친구, 사회에서 10년간 미용 기술에 매진하여 결국 잠실에 개인 미용실을 개업한 형도 있었다. 이런 사람들과 30일간 24시간 보내면서 할 게 ‘이야기’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훈련소의 생활 패턴도 건강한 생각이 드는 데에 한 몫 했다. 매일 밤 10시에 잠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난다. 매일 같은 시간 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씻는다. 매일 땀을 흘릴 수 있는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를 한다. 모든 자기계발서가 괜히 규칙적인 삶과 운동을 강조하는게 아니다. 매일 규칙적인 시간표대로 생활하고, 가벼운 땀을 흘리는 활동을 하니, 컨디션이 항상 좋았고 아이디어도 잘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음 3가지의 환경 속에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1. 새로운 장소
  2. 새로운 사람
  3. 새로운 생활 패턴

내 인생 22년 간 못했던 생각들이 한달 동안 무수히 이루어졌다. 훈련소에서 한달 동안은 군대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4) 당연한 줄 알았던 생각들이 바뀌다

내가 늘 만나던 사람들만 만나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른이 되고 나서 학교 안의 사회에 적응하는 데에만 노력을 기울였더니, 너무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앞으로 뭐 할 생각인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대답은 거기서 거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 대답들을 그리 의심하지 않고 내가 나아갈 방향인 것 처럼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 주변 친구들 역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본 친구들은 아니다. 사회에 돌아간 이후에도 다양한 장소에 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학교 외의 모임이나 단체에 들어가, 폭 넓은 인간관계를 가져야지 하는 결심을 했다.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나라는 사람을 깊이 고민해본 경험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아가는 방향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이고 그렇게 살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 고민을 하면서 좁디 좁은 길만 보던 나에서, 시야가 확 넓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시야가 넓어졌다고 해서, 내가 갈 길이 보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혼란스러웠다. 대학교 선배들처럼 하루종일 과제를 하며 학점을 잘 받고, 좋은 대학원에 가면, 내가 바라던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목표는 ‘좋은 직장을 가지는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가 할 수 있는 삶의 방법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려웠다. 내가 나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30일동안 생각해보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저 내가 그동안 목표했던 20대의 삶이 틀렸다는 것은 확실히 깨달았다. 새로운 방식의 삶을 계획해야 했고, 나에게 남은 군생활은 많았다. 1년 6개월 동안 그 답만 알고 가도 내 군생활은 성공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자대배치 결과를 받았다. 적의 항공기를 격추하는 무기의 특기를 받은 후, 나는 후반기 교육대에 입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