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는 내가 별점 5.0을 준 13개의 작품 중 하나이다.
개인적으로 별점 4.5와 별점 5.0은 한 끗 차이이다.
잘 만든 영화인 점은 똑같지만, 그 영화가 너무 좋아야 별점 5.0을 준다.
그 중에서도 <올드보이>는 열광적으로 선호하는 작품이다.
<올드보이>에서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내 집 문에 달린 거울에는 이런 말이 쓰여있다.
"웃으면 행복해"
그래서 문을 열 때마다 본능적으로 웃게 된다.
신기하게도 그러면 행복한 감정이 느껴진다.
이는 수많은 연구결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이에 대한 내용은 나중에 제대로 다룰 예정이다.
결국 나는 하루에도 수없이 미소 짓기를 반복한다.
억지로 웃음을 짓다보면 얼굴이 참 미묘하게 변한다.
그런 나를 거울로 볼 때마다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떠오른다.
나 자신과 오대수가 오버랩될 때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노력들이 오대수가 하는 노력과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까?
돈은 왜 벌고 싶을까?
나를 왜 이렇게 성장시키고 싶을까?
나는 스스로를 계발하고 성장해나갈 때 행복해짐을 알고 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열심히 살아야만 자존감이 높아지고 삶이 만족스럽다.
내 삶을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깨달았으니, 계속 그 행동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서, 왜 성장할 때마다 행복감을 느꼈느냐고 하면 많은 생각이 든다.
그게 진정 내 DNA에 적힌 것인지, 아니면 지난 20여년간 느꼈던 결핍감 때문인지.
혹시 이게 전부 내가 20여년간 또래집단에서 느꼈던 패배감이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느낀 패배감, 개인적인 좌절감 때문인가?
알 수 없다.
오대수와 오버랩 될 때면,
나 역시도 복수하겠다는 생각 하나로만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인다.
오대수는 자신을 가둔 놈이 누구인지 찾겠다는 생각 하나로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어왔다.
나는 나를 성장시키겠다는,
그리고 성장을 통해 나를 불행하게 했던 일들에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절제를 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이렇게 나와 오대수를 오버랩하면, <올드보이>라는 영화 전체가 섬뜩할 정도로 다르게 보인다.
오대수는 "나를 가둔 놈, 넌 누구냐"라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 15년을 기다렸다. 그 이후 "넌 누구냐"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런 오대수를 향해 이우진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왜 이유진은 오대수를 가뒀을까? 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까? 란 말이야.
가둔 놈이 누구냐가 아니라, 왜 가뒀냐가 아니라, 나아가서 왜 풀어줬냐를 질문했어야 한다고.
나는 나를 가둔 것에 대해서 올바르게 질문하고 있을까?
왜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틀린 질문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내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Why는 무엇일까?
내가 아직 짧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 못 보는 부분을 자꾸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결말도 생각하게 하는 점이 많다.
이우진은 작중에 이런 대사를 한다.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하지만, 복수가 다 이뤄지고 나면 어떨까?
아마 숨어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 걸?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성장하겠다, 위대한 사람이 되겠다라는 결심은 내 삶을 분명 엄청나게 만들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둘씩 나에게 열심히 살고 있는게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분명 내가 30살까지 이 속도로 지낸다면, '위대한 사람'이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끝은 무엇인가?
정말 누구도 쉽게 못하는 꾸준함으로 위대한 사람이 되고 나면?
그제서야 숨어있는 고통과 마주해야 하지 않을까.
어렸을 적부터 상처가 되어왔던 기억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
아니면 내가 성공을 위해 노력할 때 놓친 것들.
성취했다는 감정도 잠시,
일종의 '현자타임'이 느껴질 것 같다.
이우진이 오대수에게 완벽한 복수를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느꼈던 감정.
그리고 오대수가 혀가 잘린 채 최면술사를 찾아갔을 때의 감정.
그런게 내가 30대에 느낄 감정이 아닐까.
마냥 행복할 게 돈을 펑펑 쓸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멘토를 만나 대화한 경험이 나에게 힘을 준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계신 조현우님과 2시간 대화를 했을 때, 행복하시냐고 여쭤봤었다.
그리고 조현우님은 확신에 차서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한마디만 믿고 살아가고 있다.
글을 마무리 하며, 강혜정 님이 연기하신 캐릭터 "미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가 나온다.
(정말 변태신 것 같다.)
"미도"라는 캐릭터 때문에 이 영화가 더 좋아진다.
그리고 내용상으로도 중요한 역할이다.
주인공 오대수가 더 삶을 살아가려 하는 유일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우진이 복수 이후에 자살한 것은 어쩌면 누나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대수는 복수 이후에도 더 삶을 살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한다.
오로지 미도라는 존재를 위해서.
나도 그런 미도를 삶에 두어야 한다.
목표하는 위대한 30살이 될 때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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